[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웅녀와 유화, 알영 그리고 허황옥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3/05/22 11:59

웅녀와 유화, 알영 그리고 허황옥

역사를 읽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것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며, 어떤 내용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특히 신화, 설화로 포장되어 있는 역사에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를 읽고, 공부하면서 해석이 필요한 부분을 봅니다. 나라를 세우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보통은 하늘에서 온 사람이 땅이나 물의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역사를 보면 주로 이동해 오는 민족은 자신은 하늘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아들이니, 하늘에서 왔다느니 하는 말은 주로 내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태양이라고 하는 경우도 비슷합니다. 한편 자신을 땅의 신이라든지, 물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곳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땅이나 물이 옮겨 다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하늘이라든가 해는 주로 낮을 의미하고, 낮은 주로 남성으로 상징됩니다. 해가 꼭 남성일 필요는 없으나 신화 속에서는 해는 주로 남성입니다. 달이나 밤이 여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구별이 적은 원시공산사회가 모계사회이고 그래서 밤으로 상징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한편 부계사회는 주로 사유재산의 형성과 관련이 됩니다. 당연히 신분제 등과도 관련을 맺습니다. 구별과 차별이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일수록 상징은 태양이 됩니다. 밝은 사회이지만 구별이 있는 사회입니다. 개인의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밤은 여성을, 낮은 남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밤낮이라는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밤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있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언어는 대부분 낮이 앞에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이 구조에 들어맞습니다. 고조선을 세우는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죠. 남자입니다. 하늘의 아들과 결혼하는 여자는 땅에 살고 있던 곰이 변하였습니다. 어둠을 상징하는 굴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나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탄생도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물을 상징하는 하백의 딸이 만납니다. 물론 해모수는 남자이고 하백의 딸 유화 부인은 여자입니다. 웅심산(熊心山)에서 만나는 장면이 나와서 흥미롭습니다. 여기에서도 곰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곰은 토템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에도 웅진(熊津)이 나옵니다.

박혁거세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납니다. 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이 기원입니다. 당연히 혁거세도 남자입니다. 부인인 알영은 용의 딸입니다. 우물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용은 주로 물의 상징입니다. 바다의 주인은 용입니다. 그래서 용왕은 주로 바다에 있습니다.

가야의 수로왕도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납니다. 하늘과 알의 상징이 모두 쓰였습니다. 수로왕의 부인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옵니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으로 나옵니다. 물의 상징과 여성의 상징이 쓰입니다. 다만 진짜로 아유타국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상징으로 보면 바다는 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물과 여성의 상징이니 토착민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이주민으로 보아야 할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건국신화의 시작은 하늘에서 내려온 남성과 땅, 물에 있는 여성의 만남입니다. 우리 신화의 특징은 조화입니다.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싸움이 없는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펼치게 됩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